70 넘긴 디자이너가 가로수 길을 거닐다? - 비비안 웨스트우드
젊은 디자이너보다도 더 파격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여든 나이에 육박하는 그녀가 이처럼 시대의 흐름에서도 항상 맨 앞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오늘날 남들이 만들어놓은 유행만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배우지 못한 학교 교육
일흔이 넘은 나이에 손자, 손녀 뻘 되는 디자이너들과 붙어도(?) 전혀 꿇리지 않은 참신한 디자인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은, 노인이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여 완주하는 노익장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일이다. 일반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떻게 고희를 넘긴 노인이 신사동 가로수 길을 거니는 아이들 보다 감각적으로 오히려 더 앞서갈 수 있을까?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게다가 이게 하루 이틀 그랬던 게 아니라 거의 3, 40년을 그렇게 해왔다는 사실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과연 그녀는 무엇을 먹어서, 어떤 능력을 타고 나서 그럴 수 있었던 것일까?
여기에는 한 두 가지의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뛰어난 창의력이 어디서 나왔는지 전혀 단초를 찾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지금이야 비비안 웨스트우드 하면 한 벌에 몇 백, 몇 천씩 하는 옷을 만드는 럭셔리한 디자이너이지만 정작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학교에서 정식으로 패션을 배운 적이 없다고 한다. 창의력이란 게 그렇다. 세상에 없는 것을 창조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 누구한테 배우게 되면 오히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될 경우가 많다. 잘 못하면 디자인 교육으로 인해 디자인 능력이 상실될 수도 있다. 그래서 디자인계에서는 가방 끈(?)이 상당히 짧은 사람이 시대를 휩쓸어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교육만 부재했던 것이 아니라 이 분이 젊은 시절을 그렇게 곱게(?) 자라지도 못했다. 어릴 때부터 공장에서 일을 했던 어린 시절의 고단함도 그렇지만 10대에 이미 결혼을 했다거나, 곧 남자친구 때문에 이혼한 경력 등을 보면 집에 가만히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기야 요즘도 그 나이에 누드로 자기 브랜드 광고에 등장한다든지 어린 애인과 같이 살고 있다든지 하는 것을 보면 속에 담아 논 기질이 원래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사실 이런 것들이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아직도 늙지 않고 신선하게 만드는 활력소,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에, 제대로 교육을 받아가지고는 그토록 질기고 파격적인 디자인을 하기는 체질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타고난 조건이 매우 뛰어났다(?)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그런 조건을 잘 활용하여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어렸을 적부터 타고난 손재주로 브로치 등 작은 액세서리를 만들어 팔기도 했다고 한다. 샤넬처럼 패션 디자인을 하기 전부터 자연스럽게 패션과 관련된 훈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펑크와의 만남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그녀의 타고난 기질과 환경을 최초로 표출하게 된 것은 다들 아는 바와 같이 영국의 전설적인 펑크 그룹 ‘섹스 피스톨즈“의 매니저 였던 말콤 맥도웰을 만나면서부터였다. 끝은 별로 안 좋게 되긴 했지만 남자친구를 만나도 이렇게 만난다면 인생에 도움(?)이 참 많이 될 것이다. 뛰어난 디자이너가 되려면 막연히 감각만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지적 능력도 겸비해야 한다.
교육이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지적 안목이 필요하다는 뜻인데,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공장 다니랴, 연애하랴 지적인 성찰을 하기에 여유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남자친구를 만나면서부터 그녀의 지적 결함은 자연스럽게 치유되기 시작한다.
겉만 보면 펑크 음악이란 젊은 객기를 최대한 증폭한 생각 없는 음악으로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영국의 펑크 음악은 사회에 대한 지극히 지적인 견해를 파격적으로 피력한 음악이다. 겉은 정신없고 파격적이지만 그런 음악이 나오게 된 배경들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당시 영국 사회나 서구 사회에 대한 정확한 문제의식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음악형식이다. 펑크만 그랬던 것은 아니고, 하드락이나, 뉴 에이지, 심지어는 일반 팝송까지 영국의 팝 음악은 사회에 대한 일정한 지적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섹스 피스톨즈는 그런 과정에서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그룹이었다. 그룹의 매니저를 남자친구로 사귀었으니 그를 통해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자연스럽게 사회에 대한 의식, 예술에 대한 의식들을 갖추게 되었을 거란 점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지적역량들이 형성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유명한 사람을 남자친구로 둔 덕택에 모든 일을 남자친구의 의지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같다. 그래서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펑크 그룹들의 옷이나 장신구를 판매하는 샵 Let it Rock 을 시작으로 패션 디자인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게 결국 화근이 되어 남자친구와 결별하게 되기도 한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이 당시의 옷들은 옷이 주인공이기 보다는 음악이 주인공이었다. 남자친구의 입장에서는 당연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얌전히 펑크 족들의 뒷수발이나 들고 있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후로 아티스트인 남자친구의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태도와 잦은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정신적 은인이랄 수 있는 남자친구와 결별하게 된다.
이것은 동시에 패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세계 무대에 얼굴을 알리는 첫 발걸음이 기도 했다. 드디어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펑크 족들을 위한 옷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옷을 디자인하게 되는데, 노동자 출신의 못 배운 여자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첫 패션쇼에서부터 세계적인 주목을 끌게 된다. 펑크의 유전자를 가진 패션 세계 위에 자신만의 또 다른 가치를 심어서 단박에 대중들의 시선을 끌었다. 지금의 탄탄대로는 바로 이 시점부터 시작된다
-출처 : 패션산업을 보는 눈, 패션인사이트(http://www.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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