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로 들어서면서 경제자립의 기초를 세우는 경제개발 정책이 수립되고 수출조건부 생산시설들이 늘어나며 기술에 대한 증진이 급속도로 빨라졌다. 해외 합작투자사들의 기술지도로 염색가공기술도 장족의 발전을 거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정부의 산업화 정책에 따라 업계가 혼연일체가 되어 수출증대에 박차를 가해 1967년 섬유제품 수출 1억불을 달성할 수 있게 됐다.
염색가공 기술력은 선진국에 비해 낙후되어 있고 염색기술자들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미군수품의 규격을 국내 섬유업계의 실정에 맞도록 규격을 제정하고 면방, 모방 대기업들이 중량과 밀도, 강도와 국제수준의 높은 염색견뢰도, 비섬유질 등 엄격한 군수규격에 부합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염색에 있어 면은 배트염료, 아조익염료, 반응성염료로 양모는 크롬염료로 각각 염색하는 등 염색기법이 고도화되는 시기였다.
이후 월남전 파병으로 각종 군수물자 조달에 참여하면서 생사, 견직물 뿐만 아니라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쓰무기, 교가공 등도 일본의 기술지도로 수출이 시작되고 니트, 봉제도 수출에 유리하게 급신장하게 됐다.
변혁의 시기
우리나라 섬유염색 가공산업은 70년대에 들어와 기술력 제고와 더불어 변혁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1977년 섬유공업 중 가장 취약분야로 염색가공업계가 지목되면서 염색가공업육성요령이 제정, 고시되었으나 큰 실효는 거두지 못했다.
당시 세계 각국이 수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국의 기술유출에 대해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커져 기술이전 기피와 수출규제가 이어지고 기술이전에 따른 막대한 로얄티를 요구하자 이에 대응할만한 기술이 요구되었고 섬유제품의 부가가치를 향상시키는데 염색가공업의 비중이 높아졌다.
이로 인해 대구와 반월, 부산에 염색공업 전용단지가 조성되어 염색가공업을 가일층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맞는다. 이와 함께 산업의 고도화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환경오염 방지를 위한 기술이 개발되어 생활환경에 많은 개선을 가져왔다.
또한 한국염색공업협동조합연합회가 중심이 되어 많은 염색기술자를 서독의 Bayer 연구소, 영국의 ICI, 일본의 주우화학 응용연구소 등에 파견해 선진외국의 염색가공기술을 습득시키는 한편 국내외 염색가공 전문가들을 유치해 업체의 현장기술지도를 실시하는 등 기술의 발전을 도모했다.
지구촌 무한경쟁 시대
염색가공업은 80년대 이후부터 정부의 육성시책과 업계의 자구적인 노력에 따라 양적으로 고도신장세를 보였고 설비개체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경쟁국가의 기술수준 향상, 후발 개도국의 맹렬한 추격, 국내 생산비용의 상승, 3D업종 인식으로 인한 인력부족, 환경문제 등 대내외적으로 염색가공산업의 위협적인 요소들이 증가되고 성장의 한계성을 나타냈다.
일본과 이태리 등 선진국과도 신제품 및 신공정 개발의 기술수준 격차가 좁혀지지 않았고 독일은 염료, 조제, 가공제 및 기계설비의 설계에 대한 탄탄한 기초기반을 배경으로 응용기술 뿐만 아니라 관리기술면에서 가장 우위에 있어 환경친화성 기술분야를 선도해오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 염색가공산업의 기술과 품질 및 공정관리, 기술개발 수준을 비교해 볼 때 기술에 있어 단순한 생산기술인 일반적인 공정기술은 이미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지만 정밀화학이 기초가 되는 원재료 제조기술과 고부가가치 제품생산에 필수적인 첨단설비 제조기술 등은 상당히 뒤쳐져 있었다.
특히 여러 공정기술로 조합하는 복합가공기술과 에너지 절감기술, 고부가가치 부여기술 등이 낙후되어 있고 날염기술은 색상의 다양한 발현과 무늬 디자인기술 및 정밀작업부분에서 선진국에 비해 취약했다.
또한 품질과 공정관리에 있어 소비자들의 수요변화에 따라 다품종 소량생산화 되어가고 있는 변화에 대응이 부족했고 필수적인 고급 전문기술인력과 생산공정기술이 국내 염색가공업게에 매우 부족한 실정이었다.
여기에 상품기획력, 원료부문의 신소재 개발부진, 고부가가치 염색가공기술의 부족도 개선과제로 대두되었고 숙련된 기술인력의 부족이 균일한 품질관리와 공정관리를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기술 경쟁력 강화의 시기
밀레니엄 시대로 접어들면서 급속히 발전하는 산업화로 인한 환경규제가 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선진국들이 환경파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국제조약을 통해 환경오염에 대한 규제를 본격화되면서 국내 염색가공업계도 심각한 위협에 처하게 됐다.
염색가공업계 특성상 열과 공업용수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배출가스, 폐수 및 슬러지 등 환경오염 물질의 배출을 저감하는 기술이 요구되자 친환경적인 생산공정과 약품처리 등 다양한 친환경 기술력이 등장했다.
또한 첨단 신섬유 소재 개발과 더불어 염색가공 기술도 한층 진일보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업계 대부분이 OEM 생산기반에 역점을 두고 있어 신섬유 소재에 대한 염색가공 기술개발과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다.
하지만 원가상승에 비해 턱없이 낮은 생산단가와 경기침체 등 외부적인 환경요소들은 기업의 기술력 강화를 위한 투자를 저조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염색산업에 대한 정책적인 제도와 지원이 시급하지만 정부과제들이 신섬유 개발에만 초점을 맞춰져 있어 염색산업에 대한 지원이 미흡하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국내 염색산업의 현황과 의미
국내 염색산업의 통계는 대부분 한국염색공업협동조합연합회가 지난 2004년 발간한 염색가공산업 오십년사에 기초하고 있어 급변하는 시대상에 비추어 볼 때 국내 염색가공산업에 대기업현황이나 전체 시장에 대한 규모 등을 파악하기 사실상 어렵다.
그만큼 염색가공 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 지원이 열악하고 업계 전반으로도 산업발전에 대한 자구적인 노력이 따르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그나마 한국염색공업협동조합연합회 존립으로 인해 국내 염색가공산업의 구심점이 되면서 관련 산업의 미래를 기약하고 있다.
■ 한국염색공업협동조합 연합회 출범 한국염색공업협동조합연합회는 1954년 설립된 사단법인 한국염색공업조합연합회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1945년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과 더불어 일본에서 염색가공기술을 습득하고 귀국한 기술자와 섬유공업에 종사한 유지들에 의해 소규모의 염색가공 공장들이 들어서고 1950년 6.25 사변으로 경인지방의 염색가공 공장들이 폐허가 되면서 경상남북도 공장들만 간신히 명맥을 이어갔다.
이후 휴전을 기점으로 염색가공 공장들이 재건되고 1947년 조직된 경북염색공업조합을 필두로 1954년 서울, 충남, 경남, 전남, 전북, 경기, 강원 조합을 회원으로 하여 그해 9월 20일 한국염색공업조합연합회가 설립돼 1962년까지 국내 염색가공업계를 이끌어 왔다.
5.16 혁명이 일어난 1961년 중기업협동조합법이 제정공포되고 이듬해 2월9일 동법이 시행되면서 기존의 중소제조업 단체인 공업조합, 협회 등은 협회조합으로 개편되기 시작했으나 당시 업종분류상 염색가공업이 단일업종으로 분류되지 않아 협동조합 설립이 어렵게 됐다.
2년여간 공백이 발생하고 63년 다시 중소기업협동조합법 시행령이 개정됨에 따라 업종분류상 직물업과 염색가공업이 분리되어 1964년 1월 10일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전국조합인 한국염색공업협동조합 설립을 위한 창립총회가 개최되고 같은 해 2월 14일 상공부의 인가를 얻어 한국염색공업협동조합이 탄생하게 된다.
당시 초대 이사장에는 내외방직 이순희 대표이사 취임하고 상무이상에 고윤덕 씨를 인준하고 전국 159개 염색가공업체의 조합원을 갖는 협동조합으로 출범했다.
한국염색공업협동조합이 서울, 대구, 부산 등 지역에 지부를 설치해 조직을 강화해 갈 무렵 섬유산업간에 쟁점이 불거졌다.
당시 우리나라 산업지원을 위한 AID 자금 배정이 매우 유리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염색원료 수입불 배정을 둘러싸고 관련 산업인 방직협회, 소모방협회, 방모협회, 직물연합회, 메리야스연합회 등이 각축전을 벌인 것이다.
전국조합인 한국염색공업협동조합은 이러한 상황에서 고전분투할 수밖에 없었다. 각 지방 지부는 지역간의 특수성 등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불협화음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심화되자 전국조합을 연합회로 개편하는데 착안해 연합회 설립에 들어갔다.
우선 연합회 개편을 위해 전국조합을 해산하고 청산이라는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는 불편이 따르는 한편 조합운영에 공백이 발생하기 때문에 서울, 대구, 부산지역 지부를 모체로 하여 지방조합을 설립하고 지방조합이 발기인이 되어 연합회를 구성한 뒤 전국조합을 흡수합병하는 안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1966년 9월 14일 서울중부염색공업협동조합이 설립되고 9월 20일 대구경북염색공업협동조합, 9월 24일 부산경남염색공업협동조합이 차례로 설립되었으며 그해 9월 20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연합회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초대회장에 장두칠, 이사 15인, 감사 2인을 선출됐다.
■ 위기를 기회로 만들다 연합회가 설립되고 7년이 지난 시점에서 연합회 존폐위기라는 또 한 번의 시련에 봉착하게 된다. 부산시염색공업협동조합이 경영부실화로 부산시로부터 해산명령을 받으면서 중소기업협동조합법에서 정하는 법적 회원조합 수인 3개 조합에 미달해 연합회 해산이 불가피하게 됐다.
연합회는 긴급 협의회를 구성해 부산조합 재설립을 위한 창립총회를 갖고 부산시에 설립인가를 신청했지만 부산시는 조합해산 당시 은행부채에 대해 상환하던가 부채를 인수하지 않으면 조합설립 인가가 불가능 하다고 통지하면서 난관에 부딪히게 됐다.
연합회와 부산시의 팽팽한 신경전 끝에 1974년 10월 7일 부산시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아 부산시염색공업협동조합으로 새롭게 출발할 수 있게 되었고 연합회도 해산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연합회는 이와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정관상의 업무구역을 확대 개편하여 3개 지방조합의 명칭을 서울ㆍ중부염색공업협동조합, 대구ㆍ경북염색공업협동조합, 부산ㆍ경남염색공업협동조합으로 개칭했다.
■ 사업조합 현황 서울ㆍ중부염색공업협동조합(이사장 조창섭)은 지난 1966년 설립되어 조합내에 반월사업조합(68), 시화사업조합(30), 포천양문사업조합(40), 포천신평사업조합(16), 양주검준사업조합(51), 동두천사업조합(11) 6개 사업조합이 구성되어 있으며 215개 업체가 가입되어 있다.
대구ㆍ경북염색공업협동조합(이사장 우병룡)은 대구염색공단내 입주한 염색업체들이 조합원으로 등록되어 현재 120개 업체가 가입됐다.
부산패션칼라산업협동조합(이사장 백성기)은 부산염색공단(64), 녹산염색공단(20)으로 82개 업체가 조합원사로 등록되어 있으며 연합회 산하조합에 가입된 업체는 모두 418개 업체이지만 전체적인 매출규모는 집계되어 있지 않다.
다만 광업ㆍ제조업 통계조사보고서(2005.12)와 한국무역협회(KOTIS) 무역통계 지표로 2004년도에 작성된 자료에 따르면 염색산업의 2004년 생산액은 4,590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염색가공업체는 1,912개 업체로 추정되고 염색가공업에 종사하는 고용인원은 4만7천여 명으로 수출액은 41억4천2백만불을 수출한 것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