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슈트에도 여러 가지 스타일이 있다. 미국적 실용성이 돋보이는 존 F. 케네디식 아메리칸 스타일, 유서 깊은 양복점 거리인 런던 리젠트가(街) 새빌로우에서 비롯된 윈저공의 영국 스타일, 각진 어깨에 엄격한 격식을 드러낸 포멀하고 우아한 유럽 스타일. 그중에서도 가장 클래식(classic)에 가까운 멋을 지닌 건 단연 이탈리아식 슈트다.
완벽하게 균형 잡힌 재단과 고급스러운 소재로 부드러운 곡선을 살린 이탈리안 슈트는 여러 슈트 스타일의 매력을 두루 갖추고 있다. 지금 소개하려는 것도 바로 그 이탈리안 슈트, 그중에서도 가장 전통적이고 고급스러운 두 개의 브랜드 브리오니와 키톤이다.
‘제임스 본드의 슈트’로 널리 알려진 브리오니는 클래식 남성 슈트,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로만 스타일 슈트의 자존심이라고 불리는 브랜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로마 한복판에 숍을 오픈한 이후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최고의 테일러링 슈트로 명성을 쌓아왔다.
지중해 연안의 호화로운 여행지로 손꼽히는 크로아티아령의 브리오니군도에서 이름을 따온 이 브랜드는 클라크 케이블, 헨리 폰다, 존 레인, 게리 쿠퍼와 같은 할리우드 최고의 남자배우들을 비롯해 당대에 가장 저명했던 정·재계 인사들의 파워슈트로 손꼽히며 성장해왔다.
1960년대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도 기계로 만들어진 슈트를 거부하고 오히려 더욱 자연 속으로 들어가 펜네 지방에 자리를 잡고 클래식 로만 슈트 생산 라인을 확장하는 한편, 그 지역 전통의 자수 방식을 도입해 완벽한 재단기술을 더 공고히 유지해 나갔다. 가족기업으로 출발해 세계 각국에 매장을 갖고 있는 럭셔리 브랜드로 성장했지만 창업주의 후손이 여전히 회사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어 장인정신에 기댄 브랜드의 철학을 지켜가고 있다.
브리오니의 뿌리가 로마에 있다면 키톤의 근간은 나폴리에 있다. 450명의 장인이 핸드메이드로 완성하는 키톤은 100년 전통의 기술을 응용해 만든 ‘나폴리탄 클래식 슈트’를 표방한다. 그리스도인이 올림푸스산에서 기도드릴 때 입던 의식용 튜닉인 ‘키토네(chitone)’에서 이름을 딴 키톤은 1968년에 론칭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고대 나폴리의 테일러링 방식을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세기 전부터 사용된 나폴리의 전통적인 테일러링 장비를 그대로 응용해 일일이 손으로 완성한 덕분에 키톤은 40여년이란 비교적 짧은 브랜드 역사에도 불구하고 깊이 있는 이탈리아의 클래식 슈트를 그대로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작은 이탈리아에서, 경영은 뉴욕 본사에서 진행하는 등 제작과 경영을 이원화해 세계시장에서 빠르게 브랜드의 명성을 쌓아올린 점도 주목할 만하다.
브리오니, 22시간 이상 걸리는 손바느질로 220개의 제작과정
상위 1%의 VVIP를 위해 존재하는 이 두 브랜드엔 공통점이 있다. 소재와 기술, 서비스 측면에서 ‘세계 최고’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쉽게 모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어지간한 내공으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브리오니의 슈트는 본사에서 설립한 전문 테일러링 스쿨에서 엄격하게 도제식 교육을 받은 극소수의 테일러들이 22시간 이상 걸리는 손바느질로 220개의 제작과정을 거쳐 정교하게 만든다. 이 정도 공정이면 옷이 아니라 ‘작품’에 가깝다. 이 때문에 브리오니는 세계 각지에서 주문이 밀려들어도 하루 300벌 이상은 만들지 않는다.
또한 주문량의 25%는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맞춰 특별히 제작되는 맞춤복(MTM·made to measure) 컬렉션이다. 국내에도 1년에 두 차례 본사에 단 3명뿐인 마스터 테일러가 방한해 원하는 고객에게 소재부터 장식단추 하나까지 직접 선택해서 만드는 MTM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번 MTM 컬렉션의 고객이 되면 자동으로 직접 방문을 통해 수선과 관리를 책임지는 철저한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키톤, 최고의 품질만 보장된다면 원단은 어디서든
키톤 슈트엔 원칙이 있다. ‘제작은 메이드 인 나폴리를 고수하되 원단은 최고 품질만 보장된다면 세계 어디서든 구입한다’는 것. 이 때문에 키톤 본사는 전세계에서 발굴한 고급 섬유를 완벽하게 직조하기 위한 기술력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2003년엔 전세계 원단 가운데 오점이 가장 적다는 12미크론 섬유를 업계 최초로 매입해 슈트에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개발된 소재는 키톤이 독점으로 사용하며 소재의 질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재단을 거쳐 슈트로 완성된다. 키톤의 재단은 인체 고유의 선을 과장 없이 살려내는 것으로 유명한데 인위적으로 볼륨을 살리는 보조물을 넣지 않고 실루엣을 잡아나가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나폴리탄 슈트의 명성을 만드는 데엔 슈트뿐 아니라 셔츠도 기여한 바가 크다. 1998년에 론칭된 키톤의 셔츠 라인은 입어본 이들 사이에서 최고라는 입소문이 퍼져 더욱 유명세를 탔다. 통상적으로 셔츠는 제조 공정상 수작업을 소화하기 힘든 옷이다.
그러나 키톤 셔츠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단춧구멍까지 일일이 수작업으로 소화한 17단계의 섬세한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현재 키톤은 남성복 라인에서 시작해 여성복, 아웃도어 웨어, 스웨터, 슈즈 라인을 차례로 선보이며 라인업을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을 다각화하면서도 ‘이탈리아 장인에 의한 100% 핸드메이드 제작’이란 기본 원칙은 철저하게 고수하고 있다.
지난 2000년 국내에 런칭한 브리오니는 현재 호텔신라 아케이드, 하얏트호텔 아케이드, 갤러리아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본점 및 강남점 등 5개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키톤은 2007년 여름 시즌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됐으며 하얏트호텔 아케이드와 갤러리아백화점 매장 등에서 구입할 수 있다.
두 브랜드 모두 국내 론칭 이전부터 국내 재벌 기업의 총수들과 세련된 명문가의 셀레브러티들이 사랑하는 옷으로 은밀하게 알려져왔다. 최근엔 만만찮은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대중화된 명품’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별화하고자 하는 고객들로 점차 수요층을 넓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