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과 파리를 비롯해 도쿄, 서울 등 글로벌 패션의 랜드마크에서 활약 중인 디자이너들이 부산을 찾았다. 11월 19일부터 21일까지 부산 벡스코 컨벤션홀에서 개최된 ‘프레타포르테 부산’의 2010년 봄여름 시즌 컬렉션에 부산 패션피플과 국내외 프레스 및 바이어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번 시즌 선보인 각국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에는 자연스러운 색감과 천연소재를 사용해 환경 친화적 패션이 부각되었으며, ‘기성복’이라는 프레타포르테의 의미 그대로 웨어러블한 의상들이 디자이너의 세계관이 반영된 독특한 콘셉트로 공개됐다.
“우유, 패션에 양보하세요” 친환경 우유원단으로 재현한 플래퍼 스타일, 리아 성
오가닉 우유원단으로 꾸며진 리아 성의 컬렉션은 기존의 친환경 패션과는 사뭇 다른 아우라를 뿜어냈다.
창백한 피부에 활처럼 휜 눈썹, 짙은 눈 화장으로 20년대 재즈시대를 풍미했던 ‘플래퍼(flapper)’처럼 꾸민 모델들이 입고 나선 하늘하늘하고 화려한 의상들은 전부 우유로 만들어졌다고 좀처럼 믿기 힘들다.
“세계적으로 공식인증을 받은 친환경 섬유 소재는 우유원단이 유일하다”는 리아 성(성수연)은 중국에서 하이브랜드를 전개하는 한국인 디자이너. 중앙대와 뉴욕 파슨스 패션디자인과를 졸업, 캘빈클라인에서 근무하던 리아 성이 중국행을 결심한 이유는 중국의 우유원단 직조기술 때문이었다.
중국은 아직까지도 친환경 패션에 대한 인식은 낮지만 유럽 각지에 수출할 만큼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15년간 열정적으로 작업한 그는 중국패션디자이너협회의 유일한 외국인 회원으로 등록되는 특별한 이력을 갖게 됐다.
물세탁과 드라이클리닝까지 가능해진 우유원단에 내구성과 패션성을 보강하면 시장성이 매우 높을 전망이다. “우유원단이 상용화 될 날까지 널리 알리고 싶다”는 리아 성의 런웨이에는 그의 친딸이 모델로 등장해 모녀가 함께 우유원단을 세계에 알리고 있었다.
밝은 미래를 입다 단일색상으로 꾸며진 simple&white 이토 히로코
곧게 뻗어나가는 빛과 같이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기하학적 형태의 의상들은 화이트 단일 색상으로 구성됐음에도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군더더기 없이 진행된 쇼와 작품들은 대기와 구름에 굴절된 태양의 빛, 거울의 반사광처럼 명료했다.
빛과 물 등 순수한 물질에서 받은 영감을 표현한 이토 히로코는 “글로벌 불황과 경기 침체에 맞서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마음속의 새로운 재패니즘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1999년에 여성복 브랜드 ‘HISUI(히스이)’를 런칭, 도쿄와 파리에서 활약해온 그는 세상을 물같이 순수하게 정화한다는 의미로 ‘물의 결정’을 테마로 정했다.
특히 주목해서 볼 것은 마지막 거울을 이용해 만든 자켓과 원피스. 태양의 빛을 표현한 거울 조각의 반짝임에 눈을 뗄 수 없다.
그밖에도 모던한 원피스와 바디수트 등 이토 히로코 특유의 절제와 심플함이 돋보였다.
동화 속 인형의 꿈 런던 특유의 펑키함, 스티브제이&요니피
런던을 중심으로 개성적인 스타일을 전개하고 있는 듀오 스티브 J와 요니 P의 내년 봄여름 컬렉션은, 베를린 여행 중에 관람했던 인형극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꾸며졌다. 벽면에 덩그러니 세워진 침대 매트, 공중에 매달린 봉제 인형과 구석에서 전구가 빛나는 세트는 마치 인형의 집을 등신대로 꾸며놓은 것 같다.
“디자이너의 아이덴티티를 지켜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스티브 J&요니 P는 손수 제작한 오브제로 자신들의 세계를 꾸몄다. 이어서 등장한 블랙과 화이트를 베이스 컬러로 파스텔그린, 스카이 블루, 페일핑크의 의상을 착장한 모델들은 인형처럼 무심한 표정이다.
핸드메이드 특유의 온기가 가득한 런웨이 위에 저지 드레스와 테일러 자켓 등 웨어러블한 의상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물론 스티브와 요니 특유의 사랑스러운 파스텔톤의 드레이프 실크 드레스도 거대한 인형의 옷장에서 빠질 수 없다.
팀을 이룬 두 사람은 “초창기 취향과 스타일이 다를때도 많았지만, 14년을 같이 지내 지금은 많이 맞춰져 조화가 잘 된다”며, 처음에는 스티브가 남성복을 요니가 여성복을 집중적으로 작업했었지만 지금은 컨셉회의나 소재, 디자인에 있어 많은 부분을 의논해 풀어가고 있다고. “디자이너로서 세계무대에서 성장해, 생존(surviving)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두 사람의 바람은 서로에게 보내는 견고한 신뢰와 지지에 힘입어 무난히 이뤄지리라 본다.
“그림이야 사람이야?” 미술 전공 이력으로 독특한 연출, 딩용
딩용의 쇼가 시작되기 직전, 리허설 현장을 지켜본 촬영기자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어느 디자이너의 컬렉션보다도 독특한 사진이 나올 것”이라는 귀띔 그대로 이번 시즌 컬렉션 가운데 가장 이색적인 무대가 공개됐다.
머리 뒤쪽의 지퍼를 열고 전신을 감싸 올려 입는 타이즈는 그레이와 카키, 점토빛의 뉴트럴 컬러의 의상과 일체화되어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초현실주의 회화에서 걸어나온 듯한 모델들은 미묘한 음향과 더불어 인상적인 장면으로 연출됐다.
기발한 상상력을 런웨이에 펼친 딩용은 “몸에 내리쬐는 광명과 빛에 의한 그림자를 표현해 심미와 과장을 통해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한편 친환경주의자로 알려진 그는 면섬유나 리넨, 울, 실크와 같은 천연섬유에 암석과 광물의 컬러를 덧입혀 통일된 스타일을 강조해 아티스트 특유의 세계관을 표현했다.
중국 남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딩용 디자이너는 미술을 전공한 이색적인 이력과 10년에 걸친 화가 경력으로 회화적인 요소를 강조한 디자인을 전개하고 있다. 커튼콜에 등장한 딩용은 강인한 근육질로 포즈를 취하며 컬렉션과 대조되는 입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