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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원의 미학으로 본 패션 - 그 시대의 실루엣을 결정하는 바지

무더위가 한 풀 꺾이고 벌써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공기가 가슴을 스친다. 계절이 바뀌면 옷장 정리를 해야 하는데, 여름엔 쳐다 보기도 싫었던 바지를 꺼낸다. 과연 올 가을은 어떤 바지가 유행할까. 그런데 나는 왜 바지의 유행 경향이 궁금해지는 것일까.
눈치 챘는지 모르지만 바지는 유행을 많이 탄다. 철지난 것도 모르고 입고 나갔다가는 적나라하게 촌스러워지는 게 바지다. 그런데 유행에 따라 변하는 것은 바지 그 자체가 아니라 바지의 실루엣이다. 트렌드에서 벗어나거나 한 템포 늦어서 촌스러워 보이는 것은 바지 실루엣이다. 그러니까 유행에 따라 자주 바뀌는 것은 바지의 실루엣인 것이다.
바지의 실루엣이 자주 바뀌어서 다른 실루엣이 금방 촌스러워진다는 것은, 반대로 생각하자면 바지를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좁기도 하고 다른 아이템에 비해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는 증거기도 하다. 남들이 다 스키니 진을 입을 때 혼자 나팔바지를 입고 다닌다면 얼마나 촌스럽고 눈에 띄겠는가. 그러니 바지의 이 독재적이고, 획일적인 전횡(?)에 정면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바지만큼은 얌전히 그 흐름을 따라간다.
그렇기 때문에 바지는 좀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특징들 때문에 바지는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기도 한다. 80년대의 디스코 바지, 90년대의 부츠컷 실루엣, 2000년대의 스키니 진과 레깅스는 그 명칭만으로도 시대가 그려지고, 시대의 마디가 된다.
한편으로, 바지의 유행이 바뀐다면, 그것은 시대의 흐름이 바뀌는 징조가 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바지의 모양이 하체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여성들의 심리가 반영됐는지 엉덩이에 여유가 있는 배기 팬츠의 유행조짐이 보인다. 과연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지만…
그렇다면 바지를 고를 땐 무엇을 봐야할까. 나의 몸에 어울리는 바지는 어떻게 골라야 할까. 지금부터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바지의 목적
생물학적으로 본다면 하체, 즉 허리와 골반, 엉덩이, 다리는 자손 번식이라는 1차적인 목적이 강하다. 따라서 하체에 입는 옷은 이성을 유혹하는 목적이 있을 수 있다. 바지는 섹시함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선택과 집중의 문제가 대두된다. 바지를 입을 때 허리를 강조할 것인가, 엉덩이를 강조할 것인가, 다리를 강조할 것인가가 먼저 선택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은 강조한 부분을 가려서 강조할 것인가, 드러내서 강조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엉덩이를 가리면서 강조할 경우에는 배기팬츠가 적합할 것이고, 다리를 드러내면서 강조할 경우에는 스키니 진이나 쇼트 팬츠가 적합할 것이다. 반면에 엉덩이를 드러내며 강조하고자 할 때는 스키니 진이 적합할 것이며, 다리를 가리면서 드러내려면 부츠 컷이 적합할 것이다.
물론 바지의 형태는 상의와의 관계를 빼놓고 볼 수 없다. 전체적인 이미지를 결정하는데 50퍼센트 이상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가장 기본형의 테일러드 재킷이 있다. 여기에 스트레이트 실루엣의 정장바지를 입느냐, 찢어진 청바지를 입느냐, 배기 팬츠를 입느냐, 와이드 팬츠를 입느냐, 버뮤다 팬츠(통이 좁은 무릎길이의 바지)를 입느냐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다.
바지를 고르는 세 가지 기준
하체는 일반적으로 쏙 들어간 허리에서 시작하여 골반 뼈에서 한번 각이 꺾이고, 그 밑으로 살집이 붙은 엉덩이에서 두 쪽으로 다리가 뻗어나가는 등 상당히 복잡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의 하체를 가리기 위한 바지라는 조형물을 크게 보면 허리에 천이 걸쳐지고, 두 방향으로 뻗은 다리를 가리는 통이 붙어 있는 단순한 형상이다. 따라서 바지의 형태를 결정하는 요소는 다리통의 폭, 다리통의 형태, 허리에 걸쳐지는 허리선의 위치, 바지 기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리통의 형태는 완전히 달라붙는 레깅스부터 꼭 달라붙는 일자형이나 중간 폭, 넓은 폭의 일자형, 밑으로 내려갈수록 넓어지는 형(부츠 컷), 밑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배기 팬츠, 사브리나 팬츠), 허리와 발목은 조여지고 중간은 여유가 있는 형(할렘 팬츠) 등이 있다.
레깅스는 다리의 윤곽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가장 섹시해 보이고(다리가 예쁘고 길었을 경우에), 옷을 입은 것 같지 않은 실루엣을 가진다. 이런 바지는 바지의 형태 보다는 다리의 형태를 어떻게 예쁘게 담아내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다리가 예뻐야 바지의 아름다움이 실현되기 때문에 바지 자체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일자형은 말 그대로 허리통에서부터 수직선으로 바지의 선이 그대로 내려온다. 다리의 모양 보다는 바지의 모양이 주가 되는 스타일이다.
다리가 어떻게 생겼더라도 일정한 모양으로 보이기 때문에 단정해 보이고, 활동성도 좋은 바지라 할 수 있다. 다리의 모양이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날씬하게 보일 수 있는 스타일이다.
일명 나팔바지라고도 불리는 부츠 컷은 종아리 아래 부분을 넓어 보이게 함으로써 다리의 끝이 어디인지를 모르게 하여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하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허벅지 보다 종아리 부분이 넓어 보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허벅지를 가늘어 보이게 하는 스타일이다. 하체의 단점을 비교적 많이 커버해주는 스타일이다. 날씬하기는 한데, 다리길이가 좀 짧다면 권장할 만한 바지이다.
엉덩이 부분이 넓고, 발목 부분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배기팬츠는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하는 바지이다. 엉덩이 부분을 과장하여 실지 엉덩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게 하여 볼륨감 있으면서도 날씬하게 보일 수 있게 만든다. 엉덩이가 작은 사람에게는 볼륨을 더해주고, 엉덩이가 조금 큰 사람에게는 엉덩이의 실지 부피를 가려 준다. 핵심은 좁아지는 발목부 분이다.
발목의 통과 엉덩이부분의 통의 차이가 발로 내려가는 바지의 각도를 경사지게 하여, 다리가 아래쪽으로 빠르게 내려가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한 조형적 속도감이 다리를 실제보다 더욱 길어 보이게 하는 것이다.
할렘 팬츠는 다리의 부피를 과장하여 아예 다리의 모양을 알아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다리가 뚱뚱해 보이지 않게 만드는 바지이다. 허리와 발목이 조여지기 때문에 다리를 움직이기가 편하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같은 바지라도 모양에 따라서 전혀 다른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다리를 비롯한 하체의 모양새를 전혀 다르게 보이게 한다. 바지를 입을 때는 이러한 바지의 특징들을 잘 이해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에 따라 잘 맞추어 입어야 한다.
각기 체형에 따라 입어야 할 바지의 유형과 입지 말아야 할 바지의 유형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지 않고 무턱대고 입는다면 바지를 통해 오히려 자신의 단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바지와 관련된 문제에는 이러한 것들 말고도 허리선의 높이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출처 : 패션산업을 보는 눈, 패션인사이트(http://www.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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