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큰 여성들이 화가 났다. 영국의 대표적인 하이스트리트 업체 막스&스펜서(Marks & Spencer)가 빅 사이즈 브래지어를 구입하는 여성들에게 추가 요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즉 브래지어 컵 DD 사이즈 이상인 여성들은 일반 브래지어보다 3 달러 정도를 더 지불하는 가격 정책을 시행한 것이 가뜩이나 맞는 사이즈의 브래이저를 찾느라 고생하고 가슴 큰 여성을 우습게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에 스트레스를 받아온 여성들은 오버사이즈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여성들을 ‘패브릭과 노동력을 잡아먹는 비정상적인 존재’로 낙인찍은 막스&스펜서의 차별적 가격 정책에 분노를 삭히지 못했다.
10개월 전 시작된 막스&스펜서와 여성들의 ‘가슴 사이즈’ 전쟁은 분노한 여성들의 항의 서한과 전화에 대해 막스&스펜서가 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더욱 악화되었고, 이들은 막스&스펜서의 연례 주주 모임에 맞춰 주주들에게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겠다고 밝히 체형 차별 정책에 대한 대대적 공격 채비를 갖췄다.
빅 사이즈 브라 비싸게 팔려다 혼쭐
상황이 이렇다보니 막스 & 스펜서는 결국 오버사이즈 브라에 대해 일반 브라와 ‘같은 가격’을 지불하고 품질도 그대로 유지하도록 정책을 변경한다고 백기 투항했다.
오버사이즈 브래지어 ‘추가 요금’ 논란이 처음 불거질 때만해도 오버사이즈 가슴을 받쳐주려면 일반 브라와 다른 소재와 테크놀로지가 필요한 만큼 추가요금 요구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던 막스&스펜서가 꼬리를 내린 것은 타블로이드 The Sun지를 비롯, 언론에서 해당 문제를 이슈화하면서 가슴 큰 여성뿐 아니라 일반 여성들까지 막스&스펜서의 처사에 불편한 시각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미지 실추가 현실화 되자 막스&스펜서 관계자는 ‘오버사이즈 브라에 대한 가격 차별 정책’이 잘못된 것을 인정하고 가슴과 체구가 큰 여성을 위한 어패럴에 추가 요금을 붙이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즉 체구를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하진 않겠다는 것으로 당초 가슴 큰 여성들을 위한 브라가 스트랩도 더 넓고 서포팅 테크놀로지도 더 ‘뛰어나기’ 때문에 추가 요금 요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에서 180도 선회한 것이다.
하지만 ‘오버사이즈 브라’에 대한 차별적 가격 논란이 10개월 이나 지속되면서 영국의 중가 언더웨어 시장에서 강력한 기반을 다져왔던 막스& 스펜서의 소비자 이미지가 추락, 시장의 이탈이 우려되고 있다. 실제로 막스 &스펜서의 경쟁자들은 재빨리 ‘모든 브래지어의 가격은 같다!’는 점을 강조하는 온라인/오프라인 광고를 벌이면서 마음을 다친 여성들을 고객으로 유인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특히 막스&스펜서와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단 ASDA는 “대다수의 여성들이 자신의 체형이나 가슴 사이즈를 선택할 수 없는데 왜 크기로 차별을 받아야 하나?”라고 새삼 분개하며 소비자의 예산에 맞는 적합한 가격의 브래지어를 모든 사이즈에 ‘일정하게 책정’하는 ASDA의 가격 정책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또한 오버사이즈 브라를 6 달러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면서 생산가 대비 손해를 피하긴 힘들지만 소비자를 위해 ’추가 가격‘ 요구는 하지 않는다는 살신성인적(!) 면모를 과시하기도.
그렇다면 여성들과 가장 밀접한 언더웨어임에도 늘 ‘완벽한 핏’을 찾기 힘들어 가장 구매하기 까다로운 아이템이자, 끝없이 구매할 수밖에 없는 아이템이기도 한 브래지어, 그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브래지어의 변천사
여성의 가슴을 받쳐주고 단속하는 브래지어는 고대 크레타 벽화에 비슷한 의상이 등장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불어로 ‘지탱(support)’을 뜻하는 브래지어라는 단어는 1907년 미국판 보그에 처음 등장, 이 당시 패션가에 브래지어라는 말이 통용 됐음을 알 수 있다.
가슴을 지탱하고 압박하는 실질적인 브래지어는 심플하게 떨어지는 스트레이트 드레스가 유행했던 20세기 초 프랑스 디자이너 폴뽀와레가 압박하고 눌러지는 브래지어 유사품을 고안해내면서 유래했다는 말이 힘을 얻고 있다. 전체적 실루엣이 뚝 떨어지는 스트레이트 드레스 스타일의 경우 가슴 굴곡이 강조되지 않는 편이 낳기 때문이 이때의 브래지어는 가능한 한 ‘압박’해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정설.
하지만 최초로 저작권이 등록된 브래지어는 1914년 미국인 매리펠프스제이콥슨이 제작한 한 제품으로 두 개의 실크 손수건을 연결하고 베이비리본을 위에 꿰매 스트랩을 만든 형태였다.
최초로 제품 판매가 미미하자 제이콥슨은 워너스(Warners)에게 브라 저작권을 양도했고 1500 달러에 저작권을 구매한 워너스는 스몰, 미디엄, 라지 사이즈로 대강 구분되었던 브래지어 대신 실제 여성의 가슴 사이즈를 인치로 측정, 브라 사이즈를 좀더 세분하는 작업을 진행했다.(Warner''s는 지금까지 브래지어 업계의 성공적 사업자로 자리하고 있다)
이때의 브래지어는 주로 레이스 패브릭 밴드와 끈을 연결, ‘가슴을 모아주고 지탱하는’ 기능성보다는 패션 아이템적인 형태가 대세였다. 그리고 이후 몸을 조이는 코르셋 스타일을 싫어한 디자이너 샤넬이 등장하면서 1918년 이후 브라는 좀더 보이쉬 하고 가슴을 눌러주는 스타일로 진화되었다.
패브릭 테크놀로지의 발달- 브라 변혁 유도
브래지어 혁명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패브릭 테크놀로지의 발전이었다. 1930년대 Dunlop의 화학자들이 고무 성분의 라텍스를 탄성있는 실로 추출하면서 라텍스를 뜨고(knitting) 혹은 직조해서 만들어내는 손세탁 가능한 라스텍스(Lastex)가 등장한 것.
탄성은 있지만 환기와 통기가 안 돼 불편했던 고무 대신 라스텍스의 등장은 몸을 조이고, 늘리고, 혹은 보정해주는 기능을 하는 브래지어 시장에 큰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코르셋은 곧 브래지어와 거들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라스텍스 또한 고무처럼 몸을 과도하게 조이고 혈액순환을 방해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순 없어 여성의 몸은 여전히 불편함을 감내해야 했다.
오늘날과 같은 분리된 컵 형태의 브래지어는 1930년대 처음 등장했고 1935년 Warners는 컵 사이즈를 A.B.C.D 등 4가지 종류로 구분하기 시작했다.(1930년대는 또한 고품질 코튼 레이스와 망(net)이 브래지어 컵에 사용되고 클래식한 브래지어의 전형인 케스토스(Kestos, 혹은 Kestos Utility Bra)가 처음 등장한 시기이고 하다)
이후 1950년대 접어들면서 junior, medium 등으로 구분하던 영국의 브라 업체들도 미국 기준을 따르기 시작해 브라 컵은 일종의 ‘국제적 표준’을 갖추기 시작했다.
한편 2차 세계대전으로 모든 산업체에서 ‘물자, 혹은 재료 부족’이 일상화되던 1940년대에는 최소한의 패브릭, 혹은 코튼을 뒷댄 새틴, 낙하산 실크, 낙하산 나일론, 낡은 웨딩드레스 천을 소재로 핑크/피치 컬러의 유틸리티 브라가 제작되었다.
스웨터 걸 글래머
1950년대는 패브릭 테크놀로지가 급격히 발전한 동시에 맞춤형 브라가 탄생한 시기로 브라가 여성의 글래머러스한 멋을 강조하는 필수품으로 등극한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할리우드 스타들이 가슴을 모아 들어올리는(uplift) 형태의 브래지어를 착용하면서 일반 여성들도 업리프트 브래지어 붐에 동참, ‘스웨터 걸 글래머(Sweater Girl Glamor)라는 말이 등장했고 Maidenform, Berlei, Triumph 등 언더웨어 업체들과 막스 & 스펜서는 볼륨감이 뛰어난-가슴 모양을 뾰족할 정도로 솟아보이게 만드는 -콘(cone) 브라를 판매, 짭짤한 매출을 올렸다.
동시에 나일론이 개발되면서 브라는 더 가볍고, 예뻐지고, 착용이 간편해진 것으로 발전된 시기 또한 1950년대였다. 한편 1960년대는 탄성이 뛰어나고 가벼운 라이크라(Lycra)의 등장하면서 여성의 몸매를 더욱 이상적으로 표현해 주었고 모던한 디자인의 브래지어가 등장, 여성들의 활동력을 보강해준 시기다.
여성의 가슴을 도발적으로 표현하는 ‘콘 브라’는 하나의 혁명처럼 여성을 사로잡았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과 독립성을 주창한 페미니즘과 기존 통념에 반항하는 도전적 여성상을 주창했던 입셍로랑의 영향으로 1960년대 초 브라는 잠시 위축되는 모양새를 띠고, 과격한 여성들은 ‘브라를 벗고, 태워버리는’ 의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여성들은 지나치게 리버럴한 ‘브라 벗기’ 운동에 동참하지 않아 브라는 여전히 여성의 옷장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출처 : 패션인사이트 - 기사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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