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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이 그대를 굶주리게 하는가?
기사입력 2009-05-06 오전 9:16:00 | 작성자 부산패션센터 |
패션이 그대를 굶주리게 하는가?

예정현 기자




애초에 자존심은 없었는가?

도도하고 콧대 높은 여성들은 런던 리전시街 「H&M」 매장 선반에 진열된 매슈윌리엄슨의 아이템을 미친 듯이 주워 담고도 모자라 마네킹이 부서져라 걸쳐진 옷을 벗겨내기에 바빴고 하나라도 더 담으려는 여성들의 몸부림으로 매장은 승부를 다투는 격투기 현장을 방불케 했다.

새벽 6시부터 런던 H&M 플래그십 매장 앞에는 구호물자를 기다리는 난민처럼 담요와 숄을 둘러싼 여성들이 늘어섰고, 충분히 예상했으면서도 ‘전혀 몰랐다’며 느긋이 등장한 직원이 문을 열자 여성들은 올림픽 선수마냥 매장으로 돌진했다.

혹자는 하이엔드 패션과 하이스트리트 패션이 경계를 허물며 패션 민주주의를 실현한 ‘역사적인 현장’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부담 없는 가격에 ‘하이엔드 디자이너의 감성’을 구입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 앞에서 패션-아니, 디자이너의 이름-에 굶주린 여성들은 처량하고 안타까운 구매욕을 바닥까지 드러냈다.



과장 혹은 심리전…디자이너의 이름값

절박하다 못해 애처로움을 자아내는 치열한 구매 열기만큼 디자이너의 ‘크리에이티비티’가 그 값을 할지는 좀 더 생각해야 할 문제지만, 일반 여성들의 ‘디자이너 굶주림’을 치유 불가능한 불치병으로 만들어낸 H&M의 상술은 그 효과 면에서 표창장을 받아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물론 격투의 현장에서 승전품(매슈윌리엄슨의 의상)을 구매한 여성들은 이번 기회가 '불황을 이겨내는 알뜰하고 슬기로운 구매 행위‘라고 자화자찬을 했을 정도니 H&M의 심리전은 참으로 교활했다.

매장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에도 디자이너 매스윌리엄슨 연약한 몸매에 맞는 연약한 목소리로 ‘일반 대중’들이 자신의 제품을 좋아하고, 구매해 준다면 기분 좋을 것 같다는 겸손하다 못해 얄미운 인터뷰를 하고 있었으니, 광적으로 몰려든 여성들의 사진을 찍으며 로커 같은 인기를 즐겼던 로베르토까발리의 모습이 다시금 연상된다.

2004년 샤넬과 펜디의 종신 디자이너 칼라거펠트가 H&M과 제휴, 도도한 하이엔드의 감성을 하이스트릿으로 이끌어왔을 때 약탈자에게 정복된 영토처럼 초토화되었던 H&M의 매장 풍경은 일반 대중들이 ‘내겐 너무 먼 하이엔드 디자이너’의 이름에 얼마나 굶주리고 소외감을 느껴왔는지 생생히 보여준 계기였다. 오죽하면 칼라거펠트가 자신의 얼굴을 프린팅 한 ‘단순하다 못해 교만한’ 티셔츠조차 30분도 안 돼 매진되어버렸을까?

한 마디로 말해서 디자이너의 후광 앞에 주눅이 든 소비자들은 디자인 크리에이티비티나 디자인 자체를 따질 틈도 없이 ‘디자이너의 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보물을 재빨리 차지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신경증 증세를 보였던 것.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회성 이벤트 정도로 디자이너 리미티드 에디션을 진행했던 H&M이 마치 소비자의 곪은 욕망-디자이너 브랜드 구매욕-의 출구를 되찾아준 전도사 마냥 스텔라매카트니→빅터&롤프→로베르토까발리 등과 콜래보레이션을 줄줄이 이어가며 대중들의 디자이너 굶주림의 해결사로 나서며 짭짤한 수익을 챙겼다. 물론 그 속내는 디자이너 이름만 걸려도 매장이 초토화되는 구매행진으로 매출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이 결정적 이유지만 말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맹목적인 구매 행렬을 이끌고 디자이너의 가치는 ‘전지전능한 신’처럼 숭배되고 찬양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패션계의 계급을 허물었다고 평가받았던 H&M과 칼라거펠트의 시도는 디자이너에 굶주린 소비자들의 광기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심리전으로 변질되고 있는 현실이다.



달콤한 매출의 유혹

사실 하이엔드 디자이너와 하이스트리트 혹은 매스마켓의 만남은 소비자들에게는 ‘색다른 디자인 감성’을 또 하이엔드 디자이너에게는 더 많은 고객들을 상대로 자신의 크리에이티비티를 실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실제로 각기 다른 영토로 분리되었던 하이엔드 디자이너 질샌더와 스포츠 브랜드 푸마가 21세기 초, 처음으로 콜래보레이션을 시도했을 때 일으켰던 신선한 충격은 ‘패션’의 힘이 얼마나 큰 지 보여준 사례였다.

스포츠도 패션이 될 수 있다는 것, 하이엔드 디자이너도 대중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제 각기 고인 물에도 활동하던 하이엔드 디자이너와 스포츠 브랜드, 하이스트리트 업체와 매스마켓에 충격적인 깨달음을 주었다.

그리고 유명 디자이너와 매스마켓, 스포츠 웨어들의 콜래보레이션을 통해 생산된 리미티드 에디션은 디자이너에 굶주린 소비자들을 매출군으로 유도, 라테일러와 디자이너 모두에게 효과적인 매출 구축 수단이 될 뿐 아니라 지금 같은 불경기에 새로운 매출구를 여는데도 효과적이다.

실제로 매출 부진에 시달려온 갭은 2008년 디자이너 필립 림과 제휴, 화이트 셔츠 컬렉션을 선보인 데 이어 유망한 신진 디자이너와 제휴한 ‘갭 디자인 에디션’ 프로젝트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 업그레이드와 부진한 매출 반전을 일정 부분 상쇄하는 효과를 얻은 바 있다.

또한 필립 림 이전에도 마이클베스티앙, 필랩그랜지 등의 디자이너와 제휴, 리미티드 맨스웨어 컬렉션을 론칭, 디자인 감성을 중시하는 남성 소비자들을 포섭했고 주목받는 디자이너 두리정이나 타쿤패니시걸, 로다르테 등과 제휴한 여성용 리미티드 에디션을 론칭, 신진 디자이너에게 소비자와 소통할 기회를, 소비자들에게는 하이엔드 감성을, 그리고 자신은 매출 구축 효과를 얻는 영리한 전략을 써왔다.

이밖에 상류층을 상대로 한 고가의 웨딩드레스로 유명한 디자이너 베라왕도 2007년 매스마켓 리테일러 '콜(Kohl)'과 제휴, 중저가 라인 '심플리 베라(Simply Vera)' 론칭하고 일본의 캐쥬얼 브랜드 '유니클로(Uniqlo)' 도 디자이너 앨리스로이, 필립 림, 루츠앤팻모스, 알렉산더 왕 등과 리미티드 에디션을 론칭하며 디자이너 콜래보레이션을 통한 브랜드 알리기와 ‘매출 구축’ 두 마리 토끼를 제대로 잡았다.

한편 또 다른 매스마켓 리테일러 ‘타깃’도 값은 싸지만 세련된 ‘Cheap & Chic’이라는 모토 아래 프로엔자슐러, 패트릭번슨, 리베틴, 에릭패더스턴과 콜래보레이션을 진행하고 있고 미셸 오바마 여사가 즐겨 입는 JCrew는 디자이너 두리정과 제휴, 웨딩드레스 라인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영국이 자랑하는 디자이너 자일스디콘은 하이스트리트 리테일러 New Look과 콜래보레이션 라인을 론칭했고 Biba의 디자이너였던 바바라흘리니키 또한 톱숍(Topshop)과 제휴, 디자이너의 파워를 실험하고 있다. 이렇듯 매스리테일러와 하이엔드 디자이너의 콜래보레이션은 갈수록 더 강화되고 촉진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디자이너 굶주림’ 현상은 계속된다

이처럼 소비자들의 ‘디자이너 굶주림’을 제대로 파고든 하이스트리트와 디자이너의 콜래보레이션은 그 효과 면에서 진통제 겸 항우울증 역할을 한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모든 약이 그러하듯, 약에 대한 의존성과 내성으로 더욱 더 ‘강하고 파괴적인’인 방책- 소비자가 갈망하는 디자이너와 만남-이 지속적으로 준비되어야 하는 약점은 피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소비자들이 여전히 ‘디자이너’의 이름을 ‘싼 값’에 접근하고 싶어하니 디자이너+하이스트리트 업계의 콜래보레이션의 매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

물론 일각에서는 디자이너들이 이름을 팔아 너무 쉽게 돈을 번다는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름값’ 만으로 매장을 초토화시키고, 구매 행렬을 몇 블럭까지 늘어서게 하기까지 치열하게 공력을 쌓아왔던 디자이너의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실, 디자이너와 하이스트리트 업계의 콜래보레이션의 성공 가늠쇠도 결국 그 디자이너의 ‘이름값’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첨부파일#1 : 패션-로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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