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을 생각한다는 오가닉 패션, 그린 패션, 리사이클드 패션, 서스테이너블 패션, 심지어 동물성 소재를 피한다는 베건(Vegan) 패션까지 지구 가족의 일원인 패션계는 자발적으로, 혹은 마케팅 효과를 위해서라도 환경을 ‘의식’하는 온갖 용어를 차용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패션의 최종 소비자인 여성들 또한 할리우드 셀러브리티들의 환경 프로젝트 동참을 일일이 보고해대는 각종 매체의 영향으로 환경을 생각하지 않으면 뭔가 시대에 뒤떨어지고 감각 없는 사람처럼 느끼는 상황에 처했다.
이처럼 뭔가 환경을 생각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듯한’ 느낌을 갖는 여성들에게 ‘그래도 난 환경을 생각하는 의식 있는 사람이야!’라는 뿌듯함을 안겨주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1회용 쇼핑백 대신 ‘패브릭 쇼핑백’을 사용하는 것이다.
비닐과 코팅된 페이퍼백 대신 코튼- 좀 더 감각있어 보이고 싶다면 “organic Cotten” 이나 “Think Green!“ 혹은 ”Save the World" 같은 친환경적 표현이 적혀있는 쇼핑백이라면 ‘생각 좀 하고 사는’ 패셔니스타처럼 보이는데 꽤 효과적이다. 하지만 바쁜 여성들의 ’환경 의식‘을 표현하는데 꽤나 공헌을 해온 ’패브릭 쇼핑백‘은 정작 얼마나 친환경적일까?
당신의 쇼핑백은 몇 점?
실망스러운 답이 될지 모르지만 1회용 쇼핑백 대신 패브릭 쇼핑백을 갖고 다닌다는 것만으로 100% 친환경적 행동이라 하긴 힘들다. 다만 쇼핑백 소재와 생산 과정, 혹은 재활용 가능성을 꼼곰하게 점검할 경우 어떤 패브릭 쇼핑백이 더 ‘친환경적인지’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즉, 쇼핑백의 원료부터 생산/유통/재활용 가능성 혹은 폐기 과정을 포함한 ‘라이프 사이클’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고 반드시 ‘재활용 가능한 소재’기 100점짜리 친환경 아이템이라고 하기도 단언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재활용 가능한 패브릭 쇼핑백의 대명사인 코튼백의 경우, 코튼 재배 및 패브릭 제작 과정에 많은 농약과 살충제와 화석 연료가 소모되어 토양과 자원 낭비를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PANNA(Pesticide Action Network of North America)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농약의 10%와 살충제(곰팡이 제거제/제초체 포함)의 25%가 코튼 농업에 사용된다면서 단일 작물 중 코튼이 토양 및 수질 오염을 일으키는 각종 농약과 제초체, 비료 등의 온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재활용 이 가능한 코튼 쇼핑백을 갖고 다닌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던 패셔니스타들이 한 방 맞은 기분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
여기서 하나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보다 환경친화적으로 알려진 ‘유기농(organic) 코튼을 원료로 제작한 쇼핑백은 좀 더 나은 평가를 받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유기농 코튼이 일반 코튼 재배 과정보다 제초제나 농약을 덜 사용하긴 하지만 재배 과정에 더 많은 땅이 필요하고 유기농 코튼에서 생산할 수 있는 패브릭의 양이 일반 코튼보다 현저히 떨어져, 더 많은 경작 면적이 필요하게 된다.
즉 토양 오염은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고 해도 자원(토지) 사용량은 더 늘어나는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실제로 유기농 재배업자들이 더 많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 대규모 농장을 일궈야 하기 때문에 생산비 절감을 위해 노동단가를 낮추거나 작업자의 인권 의식이 취약한 제3 세계 지역에서 수익을 창출시키는 구조가 종종 지적되곤 한다.
다시 말해서 환경을 생각하는 의식있는 선진국 소비자들의 팔에 걸쳐진 대다수 코튼 쇼핑백이 값싼 노동력과 화석연료 사용 제한에 무방비 상태인 동남아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환경‘을 생각하나는 ’거창한 면제‘가 오히려 선진국의 사치처럼 여겨지기 십상이다.
원료 제공 및 제품 생산에 과정에 참가한 생산자와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서스테이너블(sustainable)'' 패션의 옹호자들이 정당한 노동 대가를 지불하는데 상대적으로 더딜 수밖에 없는 제3 세계에서 생산된 코튼에 ‘친환경적인 코튼’이라는 명칭을 붙이는데 불편한 시각을 드러내는 것도 바로 그 때문.
물론 재활용 가능한 페이퍼 쇼핑백의 경우 자연 손상은 더욱 심하다. 엄청난 열대우림 지역이 종이의 원료인 펄프를 얻기 위해 파괴되고 있고 종이 제작 과정에 각종 화학물질과 전기, 석유 등 친환경적 관점에서 ‘매우 불편한 ’ 요소들이 빼곡히 관계하고 있기 때문에 고급스런 쇼핑백에 ‘Think Green(환경을 생각하자)’라는 말이 적힌 쇼핑백을 들고 다니며 나름대로 환경 좀 생각한다고 느꼈던 소비자들은 얼굴이 달아오르지 않을 수 없다.
플라스틱이 종이보다 친환경적?
이처럼 원료부터 생산 과정까지 환경 파괴적 면모를 부인할 수 없는 종이의 속성이 논란이 되자 AFPA(American Forest and Paper Association)은 회원들-펄프 및 종이 생산업자-들은 종이 공장에서 방류되는 오염된 물의 양을 53%, 오염물질 방출량을 62% 줄이며 환경을 생각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질문 하나. 페이퍼 백과 플라스틱(비닐) 백 중 어느 제품이 더 환경친화적일까? 아이러니 하게도 그 답은 ‘플라스틱 백’이다. 플라스틱이라는 단어가 주는 ‘화학적이고 환경 파괴적’인 이미지와 달리 페이퍼 백은 플라스틱 백보다 생산 과정에서 대기오염 물질이 70% 더 발생하고 수질 오염은 50배나 더 크다(EPA 보고서 자료). 게다가 페이퍼 백 생산 과정에 더 많은 에너지와 쓰레기가 방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자연에서 생산된 것이 좀더 친환경적이지 않을까?”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던 소비자들을 당황시킨다.
실제로 동량의 플라스틱과 페이퍼를 재활용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과정에서 소비되는 에너지 량을 비교한 결과, 플라스틱 백을 재생할 때 사용되는 에너지 량이 91%나 적었다(American Chemistry Council 자료).
일반적으로 플라스틱 백(비닐 백)은 천연 가스에서 뽑아낸 에탄에 열과 압력을 가하고 수소 및 산소를 더해 만든 폴리에틸렌으로 제작되는데, 이 과정은 종이를 생산하는 과정보다 훨씬 간단해 물과 에너지, 쓰레기 발생량이 상대적으로 적다.
문제는 플라스틱 백이 버려지면 분해가 되지 않아 생산 과정에서 얻는 ‘상대적인 친환경성’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환경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순을 그 원인으로 돌리고 있다.
쓰레기 매립장에 버려진 쓰레기-플라스틱 백 포함-들이 분해되기 위해서는 산소나 빛이 필요한데 분해 과정의 악취를 싫어하는 사람들 때문에 자연분해 과정을 허용하는 매립지를 구축하기가 힘들다는 것.
그 때문에 어떤 백이 더 잘 ‘생분해 되는가’를 논하는 것이 사실상 의미가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또한 플라스틱 백은 페이퍼 백보다 쓰레기 매립장을 차지하는 면적도 적어 해마다 늘어나는 쓰레기 매립장 논란(매립장이 부족하거나 토양 및 수질의 오염을 가속시킨다는 주장)을 감안하면 플라스틱 백이 오히려 친환경적인 면에서 추가 점수를 얻을 여지가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플라스틱 백이 페이퍼 백보다 ‘친환경적’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도 바로 이 같은 근거에서다.
재활용 가능한 쇼핑백
그렇다면 가치관에 혼돈을 느끼는 소비자들을 위한 해답은 정말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방법은 ‘재활용’에 초점을 두라는 것이다. 즉 원료와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되는 에너지 낭비와 토양, 수질 오염을 차지하고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이 최고의 친환경적 태도라는 것.
따라서 품격과 가치(?!)를 생각하는 소비자라면 재활용 가능한 페이퍼 백이나 캔버스 백을 선택하고, 실용성을 중시한다면 플라스틱 백(비닐 백)을 계속 재활용하는 편이 지금 이 자리에서 선택할 수 있는 친환경적이라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딱 떨어지는 답이 없는 것만 같은 ‘친환경적 쇼핑백’에 대한 논란은 ‘친환경 패션’을 지칭하는 수많은 용어들의 난립과 마찬가지로 소비자의 혼란을 가중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