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래퍼 캐니에웨스트는 유럽 패션하우스의 인턴을 자청하며 본격적인 오뜨꾸튀르 패션에 야심을 드러내고, 루이비통과 제휴, 독특한 선글라스를 디자인하며 블링블링한 래퍼의 패션 감성을 과시했던 파렐월리엄스는 이름부터 값이 좀 나가는 테니스 슈즈 라인 “Billionaire's boys Club”을 론칭, 성공한 비즈니스맨의 자신감을 자화자찬하는가 하면 에미넘의 쉐이디(Shady), 넬리의 보칼(Vocal), 50 센트의 G-unit Clothing Company 모두 힙합의 성공을 패션 사업으로 이어가며 후발 래퍼들의 동참을 유도하고 있다. 더욱이 FDA(美패션디자이너협회)는 일찌감치 P.디디의 션존에게 남성복 디자이너 상을 제공하며 힙합 래퍼의 성공적 디자이너 변신을 전문적으로 ‘보증한 바 있다.
힙합, 그 심리적이고 문화적인 힘
이렇듯 “힙합 래퍼들의 패션 사업 = 성공한 사업의 보증수표”라는 공식이 생길 정도로 힙합은 대중 음악계의 흐름을 바꾸는데 만족치 않고 패션을 파고들며 패션 영토를 개척했을 뿐 아니라 메인스트림 패션 디자이너들의 크리에이티비티와 컬렉션에 영향을 미칠 만큼 지독한 파괴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프레프 스타일의 어번 스트리트 룩이 미국 스트리트 패션의 교과서로 자리하고 있던 1990년대 흑인 공동 주택가의 힙합 스타일에 기반을 둔 로카웨어(Rocawear)를 론칭, 스트리트 패션 업계의 트렌드 혁명을 일궈낸 대이몬대쉬와 제이즈, 러셀시몬즈의 팻팜(Phat Farm)이 자리하고 있다.
사실 단순히 셀러브리티 라벨로 치부하기에 힙합 래퍼들의 패션 라벨-곧 힙합 정신과 문화-성공은 음악이 단순한 ‘여흥’이 아니라 시대적 정신을 담은 일종의 ‘저항과 혁신’을 담은 심리/문화적 장치라는 생각을 가능케 한다.
‘자유’라는 피상적 가치에 만족치 않고 사회 구조상 실질적인 ‘자유와 동등’을 외쳤던 마틴 루터킹과 말콤엑스가 흑인의 정신을 지배하던 1960년대-하지만 뜨거운 피를 가진 젊은 흑인들은 ‘기존의 체제를 인정하는 비폭력적 저항’을 외쳤던 마틴 루터킹 보다는 ‘폭력을 정당화 하는 정의’를 부르짖었던 말콤엑스의 급진성에 더 많이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적당한 타협’ 보다는 체제를 뒤집는 진보와 혁신은 늘 젊은 피들을 매혹시키는 주제였으니까.
하지만 말콤엑스의 암살로 구심점을 잃은 흑인들이 기존의 체제(기독교)와 배치되는 그들만의 체제(흑인 이슬람주의)로 힘을 이어나기에는 사회 구조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그 힘이 너무나 약했다. 그런데 이 같은 ‘절대적 구속력과 사회적 파급력’의 고민을 안고 있던 젊은 흑인들을 한 덩어리로 뭉쳐준 것이 바로 그들의 주장과 불만을 운율로 표출, 마치 ‘경전을 읊듯’ 진행한 랩이었던 것.
그리고 랩이 힙합이라는 본격적인 음악이 틀로 재탄생되며 방송매체의 힘을 더했을 때 그 파급력은 한 사람의 연설가나 선동가가 해낼 수 없었던 엄청난 파급력을 갖게 된 것이다.
거리에서 탄생된 힙합은 초기 그 폭력적 배경과 가사 때문에 ‘체제 속에 자리 잡은’ 중산층 흑인들조차 거부감을 표시할 정도로 ‘반항적이고 거칠’었지만 노골적인 욕망의 분출을 허용하는 힙합의 속성은 늘 억눌린 감정에 시달리던 흑인 젊은층과 백인 청소년까지 사로잡는 파괴력을 발휘했다. 20세기 상업적 성공의 가장 강력한 파워였던 두 가지 요소 -대중매체와 10대 소비자-를 끌어들인 힙합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성공한 혁명으로 자리한 것.
그러나 힙합이 음악계를 침공하고, 미국 스트리트 패션계를 재편성하고 본격적인 문화 사회적 코드로 평가 받으며 그 힘을 유지할 수 있던 근간은 결국 사람의 감정을 하나로 묶어주는 ‘음악’의 심리적 파급력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과거의 혁명이 주로 ‘정치적 변혁’을 원했다면 힙합의 성공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들이 비판하는 성공한 자본가와 주류들’을 능가하는 경제적 성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은 있겠다. 하지만 힙합이 자본주의의 산물이란 점을 생각한다면 그다지 생경한 결과도 아닌 듯.
사실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패션계 또한 ‘치열한 경쟁을 뚫고 경제적으로 성공해야 존재할 수 있는 전쟁터가 아닌가?
또 하나의 시대정신-재즈
음악의 패션 파급력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사례는 일명 Jazz Age라고 불리는 1920년대 에 드러난다. 흑인들의 허름한 까페에서 시작되었던 재즈가 중상류층으로 파고들면서, 그들의 모던한 패션 스타일에 큰 영향을 주었던 사실은 음악의 사회적 영향력, 나아가 패션을 주도하는 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된다.
때론 나른하고 때론 감정을 흥분시키는 격렬한 재즈의 리듬은 자동차의 등장과 기술발전으로 ‘모던한 미국’으로 변화되는 시대적 흐름과 맞물려 기존의 관념과 체제를 깨뜨리는 새로운 ‘패션’의 틀을 이끄는 큰 영향을 미친 것.
스콧피츠제랄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Great Gatsby)'와 ‘밤은 부드러워(Tender is the night)’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의 옷차림-일명 ‘플래퍼(Flapper)’ 스타일은 여성의 몸을 조였던 코르셋을 벗고 치마는 무릎 위로, 전체적인 실루엣은 루즈하고 스트레이트하게, 머리는 짧게 커트하고 담배 연기 날리는 무대의 선 재즈 싱어처럼 메이크업을 한 ’진보적 여성‘들의 옷차림으로 디자이너 코코샤넬의 초창기 스타일과 일맥상통한다.
이 같은 스타일은 짧은 단발에 이국적인 머리 장식을 한 재즈 싱어나 무희들의 옷차림이 중상류층 계급에서 재해석된 형태로 우리나라 초창기 ’모던 걸‘들의 스타일과 유사하다.(드레이프성이 뛰어난 패브릭과 레이스를 소재로 한 플래퍼 스타일은 여성의 몸을 옥죄던 코르셋을 벗어버린 모던걸들과 만남으로 자연스런 실루엣을 만들었고, 몸을 가두지 않는 심플하고 루즈한 플래퍼 실루엣은 지금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즐겨 차용하는 스타일이다).
이처럼 사회적 통념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여성의 스타일이 흑인 음악이었던 재즈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점은 힙합의 ’사회 변혁성 만큼이나 흥분되고 매력적인 사실이다.
너희가 음악을 믿느냐?
당연히 이 같은 여성들의 옷차림은 보수적인 당시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고 플래퍼 스타일을 즐기는 여성들은 금기시되었던 다리를 노출시키는 짧은 스커트 차림에 공개적으로 음주와 흡연을 하면서 그들의 패션 스테인트먼트를 마음껏 즐겼다.
힙합이 과격한 노래말과 ‘손동작(?)’으로 노골적인 사회 불만을 토로했다면 ‘재즈 시대’의 여성들은 보이시하면서도 청순하고 나른한, 모던한 패션 감각을 통해 ‘만들어진 기존의 사회제도’에 조용한 반항을 진행했던 것. 그 결과 재즈는 늘 패션의 ‘중요한 영감의 원천’으로 자리 잡아 1930년대 화려한 주트 수트(Zoot suit)로 재탄생되었고 1950년대, 1990년대, 그리고 2009년 디젤(Diesel)의 패션쇼에서 재해석될 정도로 패션과 질긴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여러 대의 아이팟 속에 수천 곡의 음악을 저장해 놓고 그의 크리에이티비티를 향상시키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칼라거펠트는 물론 음악은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과 활력을 주는 장치로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보조적 장치’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적인 패션 영역을 확고히 한 힙합과 재즈의 패션적 파고-나아가 사회 문화적 파급력-을 생각하면 새삼 음악의 도발적이고 매력적인 힘에 사로잡히게 된다. 물론 옷 좀 입는다는 여성들의 필수품인 가죽 재킷과 스키니 진, 혹은 레깅스가 영원한 청춘의 상징 로커들의 스타일에 근거한 것임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